나는 지금 남쪽 어느 따듯한 나라의 호텔에서 격리 중에 있다. 코로나 전이었다면 별일 아니었을 이 나라 입국이 코로나 후에는 마치 첩보작전을 하는 것마냥 출발 며칠 전부터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긴장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이 시국에도 두 나라를 오가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고, 입국 당일은 그 많은 사람들이 서는 줄의 길이에 압도되어 하루 종일 혼이 빠져 있었다. 공항에서 격리 호텔로 이동할 때 처음으로 방호복이란 걸 입어 보았다. 싸구려 부직포로 만든 대형 아기 우주복 같았다. 일 년 사이 이 요상한 복장에도 적응이 되어 버렸는지 뭔가를 처음 할 때의 어색함은 느끼지 못했다.
우리가 타고 이동한 버스는 꽤 큰 편이었는데, 짐 싣는 공간이 부족해서 실제로는 사람 반 짐 반을 태워서 갔다. 목적지인 호텔을 바로 50미터 눈앞에 두고 현지인 기사와 인솔 직원이 길을 몰라 쩔쩔매는 걸 보며, '아, 돌아왔구나' 싶었고 답답한 짜증과 이상한 안도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방호복 속 집업 후드와 꽤 두꺼운 조거 바지 사이로 땀이 차는 게 느껴졌다. 다행히 입실 절차는 간소했다. 손에는 큰 캐리어 두 개를 질질 끌고 오른쪽 어깨엔 와이드 사이즈 요가매트를 둘러매고 얼른 방으로 올라갔다.
한국에서 비행기 타기전 출발 절차에는 그 날 함께 입국 격리하는 사람들을 위한 단톡방에 가입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용한 정보들도 오갔고 모두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말들도 백몇 개씩 울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거기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ㄷ자 구조의 호텔 중간에 있는 수영장 뷰가 있는 방, 제 기능을 하지 않는 중간문이 방 사이에 있어 옆방의 통화소리, 유튜브 시청 소리 등을 여과 없이 들을 수 있는 방도 있었고, 옆방 혹은 아래 윗방에서 피는 담배냄새가 흘러 들어와 괴로워하는 방도 있었다. 모든 것이 복불복인 이 곳에서 2주를 보내야 하는데 말이다.
내 방은 중간문도 없었고, 소음도 없었고, 담배 냄새도 없었고, 사람이나 탈 것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시티뷰였다. 호텔에 비치된 전기포트가 더러워 간단한 컵라면조차 먹지 못할까 봐 아예 휴대용 포트를 챙겨 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는데 내 방엔 포트마저 깨끗했다. '참 운이 좋군, 다 찰떡같아'라는 생각을 하며 짐 정리를 했다. 그러다 몇 시간 뒤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 것을 발견해 버렸다. 정확히는 아주 미미하게 작동되고 있었다. 설정 온도는 19도, 방안 온도는 몇 시간째 29.8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위를 잘 타지 않으니깐.
호텔에서 나눠준 종이 뭉치에는 격리자가 지켜야 할 여러가지 주의사항들과 함께 추가로 요청할 수 있는 서비스 물품도 리스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선풍기도 있었다.
처음 몇 시간은 버텨보기로 했다. 나보다 선풍기가 더 필요한 사람들이 사용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밤이 되어도 방안 온도는 29도 밑을 내려가지 않았고, 한국의 쌀쌀한 초봄 날씨에 익숙해져 가던 내 몸은 참지 못했고 어느새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다. 10분도 되지 않아 키가 큰 선풍기가 침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걸 왜 쓸데없이 참으려고 하는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창문도 열리지 않고, 환기도 제대로 할 수 없어 그런건지, 평소의 생활권인 2층보다 더 높은 층에 와 있어서 그런 건지 당최 이유를 알 수 없는 붓기가 며칠 째 계속되고 있다. 첫날엔 비행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둘째 날은 아직 몸이 덜 풀려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스트레칭과 요가를 했다. 그 때 뿐이었다. 이상하다 느낄 정도로 계속 부어 있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선풍기 바람을 계속 쐬면 땀으로 배출되어야 할 노폐물이 몸에서 나오지 못해서 붓는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선풍기도 껐다. 낮에 정말 더울 때만 잠깐씩 켰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추는 춤도 췄다. 그래도 팔다리에 느껴지는 그 묵직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지만 키 큰 선풍기는 계속 침대 옆에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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