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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 | writing

[파견일기] 01 일상

by 이서 2021. 4. 29.

  새벽 다섯 시. 알람 소리와 함께 눈을 뜬다. 

 

  스트레칭한답시고 누운 자세에서 발목을 돌리다가 종종 다시 잠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10분 간격으로 울리는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다시 눈을 뜬다.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몸을 일으킨다. 정신의 어깨를 잡고 올려세운다. 여섯 발자국을 걸어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와 세수를 한다.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출근 복장을 갖춘다. 상의는 필수로 입어야 하는 작업복이 있다. 가끔 너무 더우면 작업복을 벗고 땀을 식혀야하기 때문에 안에 항상 반팔을 받쳐 입는다. 정해진 하의는 없지만, 편의상 검정과 진회색 슬랙스 두 벌을 돌아가며 유니폼처럼 입는다. 작업복에 사원증을 달고 가방을 챙겨 방을 나서면 여섯 시쯤 된다.

 

  바로 아래층에는 구내식당이 있다.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해주는 이모들이 고맙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침은 참 먹을 게 없다. 영양제를 먹어야 하니 억지로 몇 숟갈이라도 뜨고 출근을 한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대략 여섯 시 반쯤이다.

  보통 아침에는 책을 읽는다.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만의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하노라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내 의지대로 원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마치 사장이라도 된 듯하다. 

 

  그런 기분도 잠시. 일곱 시. 업무 시작 시간이다.

  차를 우려내 마시며 고상하게 앉아 그날 할 일을 수첩에 적고 밤사이 들어온 메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날도 간혹 있지만, 전화나 카톡이 정신없이 울려대고 자기 방에 앉아 큰소리로 나를 불러대는 상사에게 불려 갔다가 할 일 리스트에 생각지 못한 일거리들이 추가되며 시작하는 아침들도 더러 있다. 보통은 전자와 후자 사이 어디쯤이다.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빡빡한 날은 바쁜 대로,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현지 직원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여유가 있는 날은 또 그런대로,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뙤약볕을 요리조리 피하며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 아침밥을 먹었던 곳과 같은 곳. 조금 더 꽉 찬 테이블. 때론 영혼 없이 때론 농담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하고, 또다시 강렬한 햇빛을 느끼며 사무실로 돌아간다. 자리에 잠시 앉아 땀을 식히며 제목이 눈에 띄는 인터넷 기사를 보거나 책을 읽다 보면 어김없이 졸리다. 그렇게 십 분가량 졸고 나면 오후 업무 시작이다.  

 

  회사에서의 오후는 오전보다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 같다. 점검이 필요한 일들을 확인하고, 내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예상치 못하게 생기는 일들을 마무리하고 나면 어느덧 퇴근 시간이다. 아주 긴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네시 반 퇴근 시간은 지키려 하는 편이다. 오히려 아무것도 정리되지 못하고 어느 것도 마무리 지어지지 못한 그런 날들이야말로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휴식이 필요한 날이다.  

 

  별일 없으면 저녁도 역시 구내식당에서 먹는다. 아침밥과 점심밥을 먹었던 그 공간. 아침밥보다는 약간 많이, 점심밥보다는 조금 적은 양을 저녁으로 먹는다. 메뉴는 아침보다는 화려하고 점심보다는 얌전하다. 

  식사 후에는 주로 방에 와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방에 와서 쉬더라도 하루 루틴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편이다. 예를 들면 독서, 영어나 디자인 공부, 요가 수련 등을 하며 시간을 알차게 쓰길 소망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려 한다. 성공하는 날도 있지만, 유튜브나 딴짓의 늪에 빠졌다가 겨우 탈출해서 샤워만 간신히 하고 끝내는 날도 있다. 

 

  하루 동안 스스로 적은 할 일 리스트에 몇 개나 체크가 됐는지 확인해보며 뿌듯함 또는 한심함 등의 감정을 잠시 느끼다 잠이 든다. 

  내일은 꼭 다섯시 오분 전에 일어나야지 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Photo by freestock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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